Angels & Demons.

3.3.2 An Application may not itself install or launch other executable code by any means, including without limitation through the use of a plug-in architecture, calling other frameworks, other APIs or otherwise. No interpreted code may be downloaded and used in an Application except for code that is interpreted and run by Apple’s Published APIs and builtin interpreter(s).

3.3.3 Without Apple’s prior written approval, an Application may not provide, unlock or enable additional features or functionality through distribution mechanisms other than the App Store.

iPhone SDK Agreement – Rev EA0495

3.3.2: 아이폰용 Flash나 Silverlight 같은 RIA 프레임워크를 만들어서 배포할 수 없고, Firefox나 Opera, Chrome 같은 브라우저를 만들어서 배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왜? Flash나 Silverlight를 통해 만들어 지는 결과물은 “executable code”가 되고, 브라우저에서 자바스크립트나 HTML을 자체 엔진으로 해석한다면 “interpreted code”가 되기 떄문이다.

3.3.3: 애플의 서면 동의가 없다면 “설령 그게 무슨 프로그램이건 간에” 배포와 유사한 기능을 포함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즉, 아이폰에서 유통되는 모든 컨텐츠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애플의 마켓플레이스 위에서만 유통되어야 한다는 것. 앱스토어에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올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99달러는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좀 열받는 이야기 아닌가 싶은데.

과연 이래도 이통사만 나쁜 놈들이고, 애플은 구원의 손길일까? 물론 아이폰이라는 플랫폼이 가져올 수 있는 변화와 가능성에 대해서 굉장한 기대를 하고 있지만, 컨텐츠를 통한 수익 모델의 속을 살짝만들여다 보면 핵심 애플리케이션(Safari, App Store, iTMS) 만큼은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현 이통사들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다를 것은 하나도 없다. 모델 자체에는 변화가 없는데 이통사를 빼버리고 독자 플랫폼 위에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겠다는 얘기를 한국의 이동통신 회사가 선뜻 좋다고 손내밀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순진한 것 아닐까?

APIstndlrqnsqodbfdl  and Functionality:
3.3.1 Applications may only use Published APIs in the manner prescribed by Apple
and must not use or call any unpublished or private APIs.
3.3.2 An Application may not itself install or launch other executable code by any
means, including without limitation through the use of a plug-in architecture, calling other
frameworks, other APIs or otherwise. No interpreted code may be downloaded and used in
an Application except for code that is interpreted and run by Apple’s Published APIs and builtin
interpreter(s).
3.3.3 Without Apple’s prior written approval, an Application may not provide, unlock or
enable additional features or functionality through distribution mechanisms other than the App
Store

Watch your retweet, boy.

요즘 트위터가 웹을 넘어서 저널리즘의 새로운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짧게 짧게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고, 이렇게 전송한 메시지를 자신과 링크 (following) 되어 있는 다른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리트윗 (Retweet, RT) 을 하면서, 이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트위터 안에서의 흐름 (Tweetstream) 이 이런 저런 인사이트를 주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 역시 주의 깊게 이뤄지지 않으면 큰 위험을 줄 수 있다는 잠재성이 오늘 크게 한 방 터진 것 같다.

이 사건(?)을 추적한 Danny Sulivan의 글에 따르면, 몇 시간 전 갑자기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주(洲) 동성 결혼 금지 법안인 Proposition 8 (“Prop 8″) 이 캘리포니아 대법원에서 주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는 내용의 트위팅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 것이 RT에 RT가 끊임없이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LA Times에서 자신들이 생산하는 뉴스를 올리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도 이 내용이 올라오면서 이것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링크되어 있던 글이 무려 1년 전 기사 (즉, 08년 대선 때 표결에 부쳐졌던 Prop 8과는 100% 무관한) 였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정확한 원인 (말하자면 Patient Zero) 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Danny Sulivan은 그의 글에서 구글 뉴스 시스템의 오류가 이러한 일을 빚어낸 것이 아닌가 라고 추측하고 있고, 이미 전례가 있다보니 그러한 주장에 어느정도 무게가 실린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RT하는 과정에 있어서 RT해서 소식 자체만 퍼뜨리는 데에 중점을 두다보니 정작 링크되어 있는 글 자체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데에 그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트위터가 단편적이지만 수 많은 유저 (crowd) 들이 생산하는 정보들을 발견하고 빠른 속도로 재유통하는 데에 있어서 신문과 비교되는 사례가 종종 있지만, 신문과 같은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전통적인 방법에 입각하여 소식들의 출처를 확인하고 이를 뒷받침 하는 명확한 근거들을 첨부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헤드라인만 빠른 속도로 전달되는 현재의 트위터의 모습에는 위키피디아의 오류들과 같이 무시할 수 없는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Twitter는 애시당초 저널리즘에 입각한 정보 유통의 차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보니, 이러한 잘못된 정보의 유통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고 말이다.

뭐, 당장은 RT를 “조심 조심” 하는 수 밖에는 없지 않나 싶긴 하다.

덧말: 제 트위터 계정은 @emailer 이오니, 작은 관심을. (굽신)

Update (07:42) Danny Sulivan의 업데이트에 따르면 Patient Zero가 구글 뉴스가 아닌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또 다른 블로그 포스팅이 올라왔다고 한다. 물론 “누가” 먼저 시작했냐가 이 트윗스트림의 잠재적 위험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과정에서 Facebook이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우습기도 하고, 골때리기도 한달까.

이 포스팅의 마지막 문장이 나름의 시사점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This is what happens when you communicate 140 characters at a time.

정예강군.

 “안동 군부대서 권총 3정 분실 뒤늦게 밝혀져”

어찌보면 민망한 이야기지만, 저 기사의 “군부대”란 내가 근무했었던 70사단 이야기다. 누구 말마따나 참 개판인 부대였다. 환경적으로 개판일 수 밖에 없었기도 했지만 말이다. (몇몇 예외적인 케이스가 있지만, 사단 예하 부대들의 각 대대별 인원을 평균 내보면 얼추 “40명” 정도 되었으니까) 뭐, 바꿔 생각해 보면 내가 근무할 때에는 5.56mm 탄약 300발을 잃어버렸다고 그거 찾으라고 꼬챙이 하나씩 쥐어주고선 거진 한달동안 뙤약볕에서 생고생을 시키더니, 전역하고 난 뒤에 부대가 해체될 때에는 .45 권총을 셋이나 잃어버렸으니 어찌보면 초지일관의 자세를 지녔다고도 볼 수 있겠다만.

여기서 얘기하는 .45 권총이란 것이 흔히들 “45구경” 이라고 말하는 0.45 인치 탄약을 사용하는 M1911 권총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 총을 대한민국에서 라이선스 생산한 역사가 없으므로 필시 M16의 사례처럼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 이후 미군의 물자 양도때 넘겨받은 물건이리라. 즉 짧으면 30년, 길면 50년 숙성시킨(?) 권총 3정이 있어야 할 곳에 없었다는 얘기이다. 개인용 장식장도 아닌 군 부대에서 화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묵혀두다가, 그마저 잃어버렸다는 골때리는 상황에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 잘 모르겠다.

단테의 신곡과 인용, 그리고 출처.

요즘 이 블로그 저 블로그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인용구 중 하나가 단테의 신곡에서 나왔다는 “지옥”에 관한 인용구가 아닐까 싶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The hott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in a period of moral crisis maintain their neutrality.”

(찾아보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재밌는 것은, 단테의 신곡에는 이러한 구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비슷한 구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세련된(?) 인용구로 다시 태어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존 F. 케네디 (John F. Keneddy) 라고 한다. 예일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한 인용구 모음집 (The Yale book of quotations) 에 따르자면 케네디가 오클라호마주의 털사에서 1959년 9월 16일 연설한 연설문에서 언급한 바 있으며, 실제 연설 내용은 다음과 같다.

“This is not a time to keep the facts from the people – to keep them complacent. To sound the alarm is not to panic but to seek action from an aroused public. For, as the poet Dante once said: ‘The hott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in a time of great moral crisis, maintain their neutrality.’”

이 인용구의 바탕이 되었으리라 “추측되는” 원 구절은 아래와 같다고 한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원문이 아니라 – 원문이야 당연히 이탈리아어로 쓰여있다보니 내 영역 밖이다 – Mark Musa 라는 사람이 영문으로 번역한 문장이다.)

“They are mixed with that repulsive choir of angels … undecided in neutrality. Heaven, to keep its beauty, cast them out, but even Hell itself would not receive them for fear the wicked there might glory over them.” Dante’s Inferno, trans. Mark Musa, p. 21 (1971)

원문에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이 남겨져 있다”가 아니라 “지옥에서도 받아주려 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는데 말이지.

오늘의 교훈: 인용하기 전에는 출처를 확인하고, 인용하고 난 다음에는 출처도 함께 밝히는 습관을 갖자.
덧말: 비슷한 맥락으로 많이 인용되고 있는 아일랜드의 철학자 에드문드 버크 (Edmund Burke) 의 인용구 (“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 는 아예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한다. 근데 왜 이렇게들 유명한건지 원.

서울시와 여고생.

뉴스 사이트를 “탐독하고 있는데” 스폰서 링크로 동영상 사이트인 판도라의 한 영상으로 링크가 걸려있더라. “너무 예쁘게 큰 여고생” 이라는 나름 자극적인(!) 타이틀을 달고 있길래 궁금해서 함 누질러 봤다.

요즘은 서울시에서도 바이럴 마케팅을 아주 “열심히” 하는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기서 뽑은 양반들이 작업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구만. (선발 결과 게시판은 URL 노출을 최대한 안 되도록 기를 써 놓은 관계로, 귀찮아서 링크 안함.)

(바이럴이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눈에 보이잖아?)

通名の悲しさ。

通名があれば日本国籍があるようなフリをして(会社を騙して)会社に就職できるので通名を使っているという主張に見えますが?

私は別に国籍で人を差別したことはないしするつもりはないけど国籍を隠すのに便利という使い方はいやらしいものを感じるし、差別を受けてる(受ける)から日本人のフリをするのに便利な小道具なので通名を使うのはやはりズルだと思ってます。

差別はあるのは知っているし差別はすべきじゃないと思っているけども、通名で人を騙すのは止してくれと言いたいね。(通名のいやらしさ

会社を騙す行為に違わないと仰いましたが、システム(日本の社会)が外国の国籍を持つ人(特に在日系)に対する差別行為を防ぐ方法も、意志も持ってない場合、彼らはいたいどうすればいい?差別があると言う事実をv71さんも認めているのではないか。彼らが通名を使う行為が結論的に日本人だと騙すことになるとしても、それが悪意を持つ上通名を使っている訳ではなく、自分たちをその偏見や差別から守るためだ。それまで批難するなら、いたい彼らはどうすればいいってわけだ?

もし彼らの通名詞用の目的がその”自分自身を守るため”ではないとしても、いたい日本人のフリをしてどんな不当な利益を得ることができるんだ?(会社に雇われたとしたら)脱税に繋がるわけでもない、外国人には与えられない選挙権を盗むわけでもない。どんな不当な利益が得ることができるのか本当に知りたい。

もし将来、差別が無くなって通名を使う必要がなくなったとしたら、「今まで私は差別が怖くて通名を使って日本人のフリをしていました。実は私は朝鮮人です。」と近所の人に告白できるの?まあ告白できるんだったらしてもいいけど近所の人の多くは今まで騙されたと感じると思うな。じゃあ告白できずにそのまま日本人のフリを続けるオプションを選ぶとするととても情け無いことになるよね?結局、差別を理由に通名を使って時点で負けているんだよ。「民族の誇り」とかがあるんだったら本名のまま暮らしてくれないかな。

ソフトバンクの孫正義さんがなぜ帰化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かを考えてみてほしい。それがv71さんの質問の答えになるだろう。

通名: 差別に対する最小限度の自衛手段。

許しません、と言ってるけど通名を使っている時点で在日特権を使っているとしか言いようが無いのだけど。
特権は使うけど特権だと言われたくないということなのかな?(通名は在日特権の最たるものではないのか?

v71さんが在日韓国人や在日朝鮮人に対する差別が日本社会全般におけて存在していること自体を認めていないのならこの主張は成立するはずだが、果たしてそのような差別がないだろうか。日本で生まれ、日本で育てて、日本の学校を通ってた彼らを名前や国籍だけで苛められたり、採用しなかったりするのが差別ではなかったらいたい何が差別だと呼ぶべきなのか。

日本国民は、恒久の平和を念願し、人間相互の関係を支配する崇高な理想を深く自覚するのであつて、平和を愛する諸国民の公正と信義に信頼して、われらの安全と生存を保持しようと決意した。われらは、平和を維持し、専制と隷従、圧迫と偏狭を地上から永遠に除去しようと努めてゐる国際社会において、名誉ある地位を占めたいと思ふ。われらは、全世界の国民が、ひとしく恐怖と欠乏から免かれ、平和のうちに生存する権利を有することを確認する。(日本国憲法前文から)

貴國の憲法が述べているように在日の人たちがただ、”ひとしく恐怖と欠乏から免かれ、平和のうちに生存する”方法として通名を使っているとは思われないのか。その前に、日本のシステムは憲法が確認しているその権利を保護する手段としてなにを用意し、なにを施行しているのか。

실명제도 싫지만, 비로그인은 더 싫다?

얼마전 유투브의 “자발적” 댓글, 업로드 기능 비활성화가 큰 이슈가 된 이후로 강제적인 실명제에 대한 반대 여론도 함께 커져 나가고 있는 모양인 듯 싶어, 설령 그것이 인터넷을 열성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에 국한될지라도, 실명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나름 반가운 마음이다. 재미있는 것은 실명제에는 반대하는 여론은 늘어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명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는 분위기 (블로그나 게시판 등에서 댓글을 달 경우 닉네임 뿐만 아니라, 메일 주소 혹은 블로그 주소를 링크하는 경우 같은) 는 오히려 더 강해지는 것 같다는 점이다. 물론 두 흐름에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나는 실명제를 반대한다는 것은 “익명으로 내용을 작성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익명이라 함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댓글이나 게시물을 쓰려고 할 때 실명을 밝히지 않는 “대신” 이를 대체할 수단을 요구받는다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익명의 권리가 박탈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때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나 웹사이트의 링크 혹은 메일 주소를 기재하지 않았다고 해서 몰아 세우고 비난하는 행위도 그 연장선 상에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일테고 말이다.

물론 완전한 익명 상태를 보장할 경우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았고, 얼핏 봐서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악화일로같아 보여 참 우울하다. 또한 익명이 보장될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댓글을 달 때 가벼운 마음으로, 혹은 빈정대는 투로 댓글을 달게 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는 듯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익명 댓글을 막거나 비난하는 근거로 삼아서도 안되고,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함께 풀어나가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더더욱 올바른 것이 아닐까?

(사실 나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다른 이들과 별반 차이 없는 입장이긴 했지만, 입장을 바꾼 이유가 댓글 달리는 일이 별로 없어서는 아니다!)

네이버 오픈캐스트: 대리편집 (Proxy) 혹은 개방 (Open) ?

네이버 오픈캐스트가 정식으로 서비스를 런칭하면서 “클로즈드캐스트”니, “왜 네이버가 했다 하면 까기 바쁘냐” 등의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네이버 오픈캐스트를 보면서 느낀 점은 포털의 편집권을 사용자에게 개방 (open) 했다기 보다는 위임 (delegation) 하는 것에 더 가까워지는 결과를 낳지 않겠는가 라는 점이다. 개방과 위임이 무슨 차이냐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한 번 둘러보자.

개방04(開放) 「명사」 「1」문이나 어떠한 공간 따위를 열어 자유롭게 드나들고 이용하게 함. 「2」금하거나 경계하던 것을 풀고 자유롭게 드나들거나 교류하게 함. ‘열어 놓음’, ‘열어 둠’으로 순화.

위임(委任) 「명사」 「1」어떤 일을 책임 지워 맡김. 또는 그 책임. ≒위기03(委奇). 「2」『법률』당사자 중 한쪽이 상대편에게 사무 처리를 맡기고 상대편은 이를 승낙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

즉, 전자는 별도의 제약 없이 완전히 열어두는 것이고 후자는 일정 범주 내에서 정해진 일들을 대신 시키는 것 쯤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오픈캐스트가 개방이라기 보다는 위임에 가깝다고 보는 것인가? 바로 네이버 메인 화면의 오픈캐스트 섹션에 나타나는추천캐스트의 존재와, 그 추천캐스트의 선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추천캐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별도의 기준을 두고 선정하여 메인 화면에 노출시킨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 별도의 선정 기준이 무엇이고, 그러한 기준에 따라 이를 선정하는 자(者) 혹은 집단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추천캐스트를 선정할 떄의 기준이 구독자가 많은 기준인 것인지, 선정하는 집단은 별도의 사용자 풀을 선정해서 그들의 투표로 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픈캐스트 이전처럼 네이버의 담당자들이 선정해서 올리는 것인지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선 오픈캐스트 웹사이트 및 관련 카페를 열심히 찾아봐도 언급이 없다.

이에 대해 명확한 언급이 없다면 외부인 (혹은 일반 사용자) 이 보기에는 네이버 내부적으로 검토한 다음 이를 메인 페이지에 올린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 터이고, 만일 네이버에서 추천캐스트를 선정한다고 했을 때 추천캐스트로 노출되는 오픈캐스트의 특정 발행분의 내용은 해당 오픈캐스트의 편집자가 등록한 내용 그대로 노출되더라도, 껄끄러운 내용이 담겨있는 경우 사전에 “필터링”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오픈캐스트는 런칭 그 자체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지금까지 외부 컨텐츠를 아예 통째로 가져와 버리던 관행을 넘어 외부로 트래픽을 넘겨주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서비스 자체도 개별 오픈캐스트에 대해 구독 기능이 제공되고, 사용자가 로그인 했을 경우 마이캐스트가 추천캐스트보다 우선해서 노출될 뿐더러, 이를 자신의 캐스트 관리 페이지에서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이 제공되므로 사용자에게 다양한 편의는 물론 개인화 (personalization) 의 수준을 높여주는 서비스임에는 틀림 없으리라.

하지만, 대다수의 이용자들이 제공되는 기능의 10%도 채 안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픈캐스트 열독률이 얼마나 높게 나올 것이며, 실제로 오픈캐스트 구독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그 안에서 또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또한 구독하고 있는 오픈캐스트가 없을 경우에는 (당연히) 추천캐스트의 내용이 뜨게 되므로 오픈캐스트를 통해 의고하고자 했던 효과가 전체 사용자 풀을 놓고 봤을 때 얼마나 나오겠느냐는 부분도 뺴놓을 수 없겠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봤을 때 과연 오픈캐스트가 실제 “개방”의 효과를 가져오기 보다는 외부 컨텐츠를 대신 발굴해 오는 메인 화면 편집 “대리인 (proxy)” 의 무상 고용(?)이라는 결과를 낳지 않겠는가 라는 비관적 생각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오픈캐스트가 의도하는 높은 수준의 포털 메인 화면 개인화가 대다수의 사용자에게 적용되면 좋겠지만 말이다. (외부 컨텐츠의 제 3자 재발행에 따른 문제 역시 무시할 순 없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는 것이 나을 듯 싶긴 하다)

광고, 배경.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새로운 이미지 광고를 봤다.

잘 생긴 오빠와 이쁜 언니가 나오고, 뭐 썩 나쁘지 않은 워딩, 다 좋다. 근데 왜 대한민국 대표 그룹 중 하나라는 인간들 이미지 광고의 배경이 일본이냐는 거다. 아니, 짧게 지나가면 철도 건널목 옆 표지판 안 보일 줄 알았고, 전동차 보면 JR의 전동차란 것 모를 줄 알았나. 게다가 골목 신에서도 이면도로 측면에 흰 선 그어놓은 동네가 얼마나 된다고.. 

오른 쪽에서 두번 째 사진은 철길 건널목 장면에 등장하는 표지판과 동일한 녀석의 사진을 찾아서 올려놓은 것이다. 물론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눈치 챘겠지만, 광고에 등장하는 녀석엔 뭔가 하나 더 달려있긴 하다. 그래봐야 추가 기재 사항에 불과하므로 그다지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가장 오른쪽 사진은  광고에서 등장하는 전동차인 JR 토카이(東海)에서 운행하는 313계(係) 열차의 사진을 올려 둔 것이다. 차문이 세개라는 점과, 전동차의 머리 부분이 흰 색이라는 점 등을 보면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마지막에 “대한민국이 좋은 소식으로 가득해 질 때 까지” 라는 구절이 나오는 동네 배경이 일본이라는 골때리는 장면은 참 이해할 수가 없어서 말이지.